Hail Hydra.


이 캡쳐가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한 순간 커뮤니티고 트위터고 양웹이고 불바다가 됐던 걸 아직도 기억한다. 하지만 이전 블로그에도 썼듯이 나는 불바다가 되기 전 이미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 #1 이슈를 읽은 상태였고, 저 장면을 보고도 뭔가 재밌는 걸 시작하는구나 외에는 별다른 감상이 없었다. 코믹스에서 이 정도 도발은 놀라울 게 아니었고 쭉 캡아쪽 코믹스를 읽던 나한테는 자초지종을 추리할 수 있을 만한 떡밥이었으니까. 그저 애매하게 용두사미 만들지 말고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기만 바랐을 뿐이다.


그리고 하이드라캡 이벤트를 정주행 마치고 난 후 나의 소감: 이제부터 코믹스 최애 이벤트는 시크릿 엠파이어다 (진지하게.)



스포일러 주의





Secret Empire(2017)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이드라 스티브가 세계를 정복하는 이벤트다. 관련된 이슈로 타임라인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Standoff 이벤트 때 코빅에 의해 젊음을 되찾고 하이드라로 현실 조작당한 스티브의 첫 모습.

하이드라 스팁 관련 언급이 없던 시절이었는데도 이미 이때 뭔가 쎄함이 느껴졌었다. 어딘가 묘하게 내가 알던 스티브 로저스가 아닌 느낌.


먼저 스티브는 힘에 대해 그렇게까지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이 무력한 건 죽도록 싫어하지만 필요 이상의 더 큰 힘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특히 코스믹 큐브 같은 우주적 스케일의 힘이라면 경계부터 하고 보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 해석은 그랬는데...


이 이벤트에서 젊어진 후 스티브는 자기가 "돌아온" 것에 대해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저 때 돌아와서 기쁘다고 말한 뉘앙스는 하이드라 요원인 자기 자신을 되찾아서 기쁘다고 얘기한 거였겠지.


여기까지 생각해 보니까 엥 이거 완전




이 장면 아니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라이토는 원래 정체성을 되찾은거고 스티브는 조작당한 거라는 차이가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까 되게 그럴싸하네ㅋㅋㅋㅋㅋㅋㅋ





스티브가 하이드라 됐을 때 좋았던 점 중 하나가 시원시원하게 빌런 처단하는 모습이었음.

심지어 스티브를 하이드라로 바꾼 레드 스컬 본인조차도 스티브의 손에 죽는데 죽인 이유가 "레드스컬은 하이드라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지도자가 아니라서" 였음. 아 너무 하이드라다운 이유로 레드스컬을 조져버리는데 감탄밖에 안 나오더라. 원래의 스티브라면 절대 저런 사사로운 이유로 사람 죽일 리가 없으니 이건 빌런화된 스티브에게서만 볼 수 있는 카타르시스였다




그는 언제나 최고의 전략가였지만, 동정과 자비로부터 해방된 그가 보여준 전략은 최고의 걸작이었다.


('지구인 여러분, 스티브 로저스가 자비심 있는 선한 인간인걸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라는 걸 잘도 돌려말하고 있는 모습이다.)


스티브가 빌런화되면서 보여준 전략을 보면 자비없고 강력하다. 히어로들을 숨겨준 도시 전체를 날려버리는 건 기본이고 자기한테 개기는 나라한테 대놓고 선전포고를 한다. 인휴먼들은 별 나쁜 짓을 안 했는데도 인휴먼이라는 이유로 색출해서 수용소에 가둬 버린다.


이 모든 과정의 시작에서 스티브 로저스가 어떻게 권력을 잡았느냐, 를 살펴보면 허무한게, 세계 정부에서 스티브에게 권력을 그냥 갖다 바쳤다. 쉴드 통제권이며 미국의 전작권 같은 엄청난 권한들을 단 한사람 스티브 로저스에게 몰아 줬다. 뒷공작으로 하이드라 군대를 움직여서 전세계에 전쟁 공포를 좀 심어두긴 했다만 때가 됐을 때 스티브는 자기에게 그 권한들을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그냥 겁에 질린 정부가 너에게 권한을 줄 테니 우리 좀 살려달라면서 갖다 바쳤다.


스타워즈 3 시스의 복수에서 팰퍼타인이 권력을 잡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민주주의가 이렇게 끝나는군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하이드라의 수프림 리더로 세계를 장악한 스티브. 그는 저항하다가 구금된 동료들을 찾아갈 때마다 하일 하이드라라고 하고 하이드라에 충성을 맹세하면 풀어주겠다고 회유한다.

대부분은 다 씹고 차라리 죽이라고 한다. 캡쳐는 저항하다가 총살당하는 릭 존스.

나는 이렇게 상대적으로 약한 히어로들이 거대한 힘 앞에서 개기다가 순교당하는 전개가 너무 좋아... 맘은 아파도 저런걸 보면 아 진짜 히어로답다 싶어.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어. 그렇지? 이건 내 기회였어. 나는 네가 될 수 있었어.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희망을 주는 것. 무언가를 믿게 만드는 것.
하지만 난 또 망쳐버렸지. 난 뭐든 할 수 있었어. 난 최고로 뛰어난 것들을 만들곤 했지만 -
나는 나 자신을 네가 되도록 만들지는 못했어. 내가 할 수 있는건 가짜를 만드는 것 뿐이었지.

내 안의 어떤 부분은, 결핍되어 있어. 아마도. 그래서 우리가 싸운 거겠지. 내가 질투가 나서.

그냥 알아줬으면 좋겠어. 난 너를 정말로 구해주고 싶었어. 항상 네가 나에게 의미했던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거든(I wanted to be to you what you always were to me) - 나의 영웅.
당신을 실망시켜서 정말로 미안해, 캡.


비슷하게 스티브 데리고 자폭하기 직전 토니 멘트도 좋았음.

아무리 내가 존경했고 인생을 배팅했던 사람이라도 죽여야 하는 상황이 되니 다들 마음을 먹는 것이... 자기의 사적인 존경보단 인류의 평화가 더 중요한 거지.





물론 이분야 갑은 샤론 카터 선생님이십니다 아 언니 너무 멋있어 (야광봉

근데 스티브 얘는 빌런화된 다음에 샤론한테 집착감금남친처럼 굴었으면서 샤론이 목에 칼 들이대니까 배신감느꼈는지 세상 시발 다 망하라면서 온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네

너임마 양심이 있으면 그러면 안 되지... 아참 얘 지금 진짜로 빌런이어서 양심같은거 없지 참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악을 마주했던 그 순간, 우리는 기억해냈다.

그가 똑같이 행동했던 그 순간. 그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냄으로서 그의 유산을 존중했다.


마지막 순간 하이드라 스팁을 무너뜨릴 때 히어로들이 생각한 건 스티브 로저스가 남긴 것들이다. (진짜) 스티브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라면 흔들리지 않고 거대한 악에 맞서 싸웠겠지, 이런 것들.


그러니까 하이드라캡은 자기 자신이 남긴 유산에 의해 무너진 셈이지. 레드스컬이 자기가 만들어낸 하이드라의 정신 때문에 죽은 것처럼 하이드라 스티브도 진짜 스티브가 남긴 정신적 유산에 의해 무너지는 전개가 아이러니하고 좋았더랬다.




코빅: 나는 모두가 행복하길 바랬어요. 하이드라가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하이드라 스팁)을 만들었어요. 그렇지만 아니에요. 그는 너무 무섭고, 이젠 너무 강해요. 여기 숨어요. 그는 우리를 찾을 수 없을 거에요.
스티브: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을 거야. 나는 평생을 파시스트와 싸워 왔어. 내가 보장하는데 그들에게서 너를 영원히 안전하게 지켜줄 도피처란 존재하지 않아.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야. 일어서서 싸우는 거지.


코빅이 바꿔치기한 현실에 갇혀 있던 진짜 스티브. 두려워서 숨어 있는 코빅에게 건넨 대사가 너무 스티브다워서... 좀 울컥했다.


물론 빌런화된 스티브도 매력있었지. 카타르시스 쩔고 계획 딱딱 맞아떨어지는 거 보면 속 시원하고 간지나고. 근데 진짜 스티브의 무게라는 건 그보다 훨씬 더 멋있고 선하고 정의로웠다. 오히려 이 이슈 읽기 전에 고구마답답이처럼 느껴졌던 캐릭터가 더이상 그렇게 느껴지지 않게 됐다. 빌런 스티브가 실각하는 게 하나도 아쉽지 않고 원래의 좀 답답한 스티브가 돌아오는데 너무 감격스러웠어... 이것까지 노리고 썼다면 진짜 잘 쓴것





그리고 이어서 코빅과 스티브를 현실세계로 끌어내는 버키.... 나 이장면보고 확신했는데 작가가 진짜 캡덕이구나...

저 때 비행기에서 버키의 손을 놓친 게 평생의 트라우마인 스티브였는데... 이번에는 버키가 손을 내밀어서 스티브를 구해주러 옵니다.... 스티브는 그 손을 잘 붙잡고 현실로 되돌아오고요...


나 진짜 캡아 에피소드도 아니고 마블코믹스 메인 이벤트의 클라이막스에서 이 장면의 교차편집을 볼 줄 몰랐다니까....?

작가님 충성충성이에요 이사람은 진짜 캡덕이다 진성 캡덕이야


빌런들이고 히어로들이고 코스믹큐브를 이용할 때 무생물인 큐브 형태로 이용하려고 했지 불안정하고 자의가 있는 꼬맹이인 코빅을 불러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코빅을 이용한다는 건 얘를 설득해서 자기들의 뜻대로 해야 한다는 건데, 그것보단 그냥 큐브를 들고 소원 비는게 훨씬 쉽고 자기맘대로 하기 쉬우니까.


유일하게 버키만 코빅을 불러내자고 했다. 버키는 코빅과 같이 지내는 동안 정이 들었고 코빅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파악을 하고 있었다. 애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뿐이지 아주 나쁜 애는 아니라는 것도 아주 강한 애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음. 결국 코빅의 잠재력을 믿은거지... 물론 스티브를 죽이지 않고 모든걸 바로잡을 수 있는 가능성에도 기대를 걸었을 테고.


버키가 코빅을 맡았을 때 장난으로 야 버키야 육아 잘 해라~ 너 그거 세상을 구할 육아다~ 했는데 진짜 세상을 구해버림 ㅇㅅ;ㅇ 버키의 다정함과 신뢰가 세상을 구할 수 있어 따흐흑 따흐흐흑




- 나는 그들에게 힘을 줬고 그들은 그걸 받아들였는데, 너는 그들에게 뭘 줄 수 있지? 이웃을 두려워할 기회? 너와 같은 인간들이 별들을 여행하는 동안 땅을 기어다닐 수 있는 기회?
- 그들은 지금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어. 너는 영웅들이 이겼다고 하겠지. 이번에는 결과가 달라질 거라고 얘기하겠지만 달라지는 건 없을거야. 그렇게 되면 그들은 떠올리게 되겠지. 자기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소속되었을 때의 느낌, 그들을 짓눌렀던 것들과 싸우는 느낌, 공동체를 장악하고 진짜 질서가 도입되는 것을 보는 느낌. 태양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고 진정한 힘이 무엇이었던지 깨닫는 순간.
- 그렇게 되면 그들이 그 다음번에는 누구의 편을 들게 될까? 일까, 일까? 왜냐하면 내가 본 그들은 자기 자신을 하이드라라고 칭하는 걸 매우 자랑스러워 했거든.


Secret Empire: Omega에 나온 하이드라캡의 나레이션

모든 사건이 끝나고 하이드라캡을 찾아간 진짜 스티브와의 대화.


이 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트럼프를 풍자하려고 썼단 해석이 메이저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확실히 이 이슈 보니까 확 와닿더라

특권을 누리면서 우주를 왔다갔다하는 히어로들과 맨날 집이 부숴지는 일반 소시민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있었는데

어느날 나타난 하이드라캡은 시끄러운 인휴먼들을 다 잡아 가두고 하이드라 군대에 자원입대해서 소속감도 갖게 해 주고 얼마나 좋았냐

이런 점에서 진짜 스티브보다 하이드라캡을 진심으로 따른 사람들도 많았다는 걸 암시하는건데...

여기서 인휴먼을 이민자들로 바꾸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미국인들의 심리와 일치하는 셈이지.


내가 코믹스 읽으면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의 심리까지 이해하고 싶진 않았는데 진짜 묘하더라

그러고보니 스펜서가 연재 시작했을 때는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였을튼드.... 진짜 대통령 된 걸 보고 스펜서도 멘붕했겠지


하지만 미국아 우리는 행복하다~!!





에필로그 >


스티브는 샘에게 방패를 돌려주고, 그가 캡틴아메리카를 계속 하라고 했지만

샘이 "이게 너한테 주는 미션이니까 니가 방패 들고 캡아로 돌아와서 다시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라" 라고 말하면서 그를 다시 복귀시켰다.

여기서 연재되는 시리즈가 새 캡틴아메리카 시리즈인데 마크 웨이드와 크리스 샘니가 연재한다고.

이전처럼 스케일 크고 어그로 거하게 끄는 에피소드 말고 소소하고 클래식한 에피소드 위주로 흘러갈 것 같다.



그리고 이 이벤트 도중 KIA 처리된 블랙 위도우를 쫓는 현남친(호크아이)와 전남친(버키)가 나오는 Tales of Suspense도 연재중인데

이건 1화만 나왔지만 재밌어보여서 계속 챙겨보게 될 듯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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